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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학교는 생태·환경 교육에 상당한 관심이 있다. 동아리 프로그램도, 학년마다 진행하는 교육과정 재구성 주제도, 한 학기 한 권 읽기(온작품 읽기) 책 선정에도 큰 영향을 미칠 만큼 환경에 대한 관심이 교사, 학생들 모두에게 높은 편이다. 이번 서평단 모집 공지를 보았을 때, '이건 꼭 읽어야 해!' 하는 생각이 번득였다. '기후위기', '북극곰', '지구 온난화' 등의 키워드 때문이었을까, 막연한 기대를 하고 책을 펼쳤다. 

 

 주인공은 '에이프릴 우드'라는 열 한 살 여자 아이다. 이 책은 에이프릴이 기상학자인 아빠를 따라 북극권의 '베어 아일랜드'라는 곳에 6개월가량 머물게 되면서부터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베어 아일랜드'는 실존하는 지명이다. 

노르웨이 북쪽 작은 섬 '베어 아일랜드'

 위 사진에서 빨간 동그라미로 표시된 작은 섬이 바로 이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베어 아일랜드'다. 대부분의 이야기는 저 빨간 동그라미 안에서 이루어진다. '베어 아일랜드'는 영어로 표기해도 우리가 알고 있는 'bear island'다. 말 그대로 곰의 섬. 실제로 인터넷에 해당 섬에 대한 정보를 찾아봐도 이름 외의 정보는 거의 없다. 그나마 찾아낸 정보는 기상 관측소만 존재하는 텅 빈 섬이라는 점. 

 

 이야기 속에서도 이러한 설정은 이어진다. 베어 아일랜드에 기상 관측 임무를 맡게 된 아빠를 따라 에이프릴이 오게 되고, 오면서부터 북극곰에 대한 이야기를 여러 사람들과 나누게 된다. 이 섬이 베어 아일랜드인 이유는 곰이 많이 살았던, 먹이를 찾아왔던 장소였기 때문이었으나 현재는 중간중간 존재하던 만년설과 빙하가 녹아내려 곰이 방문할 수 없는 말 그대로 텅 빈 섬이 되었다는 것이다. 

 

 에이프릴은 아빠와 함께 섬도 탐험하고, 소풍도 가고, 썰매도 타는 등 단 둘만의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겠다며 큰 기대를 하고 섬으로 떠나왔지만 하루 종일 기상을 관측하는 기계를 마주해야 하는 아빠는 에이프릴의 기대를 만족시켜주지 못했다. 새벽같이 나가 기상 관측실로 향했고, 저녁이 지나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결국 섬에서도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던 에이프릴은 나 홀로 섬 탐험에 떠나게 된다. 오늘은 남쪽으로, 내일은 서쪽으로.. 걸어서 닿을 수 있는 다양한 장소에 탐험을 시작했다. 그때 믿을 수 없는 일이 발생한다. 이 섬에는 없어야 할, 있을 수 없는 북극곰 한 마리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열 한살의 작은 아이와, 커다란 북극곰이 마주하는 장면은 글을 읽으면서도 상당히 긴장이 되었다. 귀여운 곰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우리의 상상과는 달리, 곰은 매우 사납다. 손을 한 번 휘두르면 인간은 상당한 타격을 입고, 심지어는 목숨까지 잃을 수도 있는 파괴력을 보여준다고 한다. 그런데 그런 북극곰이 어딘가 이상했다. 인간이 어디선가 버린 플라스틱 그물에 북극곰의 앞 발 한쪽이 칭칭 감겨 있었던 것. 기존 발의 크기보다 두 배가량 퉁퉁 부어버린 그 발을 괴로운 듯 들어 보이며 포효하는 북극곰의 모습을 에이프릴은 먼발치에서 바라보았다. 

 

 이후로 에이프릴은 어린이인 자신이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안을 통해 북극곰을 돕기로 결심하고, 또 꾸준히 실천한다. 북극곰에게 '기별이 될 지는 모르겠지만' 한정된 본인의 식료품을 탈탈 털어 가져다 주기도 한다. 질긴 플라스틱 그물을 끊어주기 위해 접근하기도 하고, 상처약을 한 통 다 써가며 치료를 해 주기도 한다. 그렇게 경계심을 푼 북극곰과 에이프릴은 서로의 진심을 말하고 읽을 수 있는, 마음이 '통하는' 사이가 된다. 친구가 된 것이다. 

 

  "난 곧 돌아가. 내가 원해서가 아니라, 그래야만 하니까. 학교에 가고 몇몇 시험을 통과해야 나중에 커서 뭔가 중요한 일을 맡을 수 있어. 근데 그거 알아? 나는 어른이 될 때까지 기다리지 않을 거야. 더는 다른 사람들에게 맡길 수 없어. 북극과 지구를 도울 거야. 그리고 지금 당장 시작할 거야."

(중략)

"하지만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나아. 알다시피 인간은 아무것도 안 하는 걸 제일 잘하거든. 나는 이제 그런 인간이 되고 싶지 않아."

 

 인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걸 제일 제일 잘한다는 이야기는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나 하나라도 열심히 도우면'이라는 생각도 꽤 많이 하곤 하지만, 더 많은 경우에 '나 하나쯤이야, 티도 안 날 거야'라는 생각이 더 먼저 드는 게 사실이다. 북극곰의 발을 칭칭 감고 있던 그 플라스틱 그물을 자의던, 실수던 바닷물에 흘려보낸 그 누군가는 과연 알았을까. 단지 그물이 바다 어딘가에 가라앉아 언젠가 썩어 없어지고, 언젠가 누군가에 발견될 거라 쉽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가 본 적도 없고, 존재를 상상조차 해보지 못한 그 먼 곳에 있는, 또 그곳에는 절대 살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어떠한 생명체가 피해를 보며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다는 것을 결코 알지 못했을 것이다. 상상의 이야기를 쓴다 하더라도 거기까지는 닿지 못했을 것이다. 사람은 어떻게든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북극곰은 중간 중간 떠 있는 만년설과 빙하를 딛고 먼 사냥길에 나선다. 빙하가 조금씩 녹기 시작하면서 북극곰이 한 번에 헤엄쳐 가야 하는 거리는 상당히 많이 늘었지만 적응할 수 있었다. 다만 이제는 아니다. 아무리 야생의 곰이라 할지라도 몇 백 킬로미터의 바닷길을 헤엄쳐 건너가기는 어렵다. 중간중간 쉴 수 있는 곳이 없는 상황에서는 더욱이 말이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모두 알고 있다. 각종 뉴스에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환경 잡지에서 보고 들어 알고 있다. 우리는 그때 어떤 생각을 했을까. 

 

 '불쌍한 북극곰, 살 곳이 없어 어쩌나' 라던지, '북극곰을 위해 모금을 해야겠어' 라던지, '북극곰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찾아 적극적으로 실천해야겠어!'라고 다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쉽사리 '나의 어떤 행동'을 이 모든 현상의 원인으로 생각하기는 쉽지 않다. 저 먼 곳에 사는 북극곰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을 지금 여기에 사는 우리가 했을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하면 다짜고짜 화를 내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말도 안된다'며 말이다. 정말 말도 안 되는 것은 다른 게 아니다. 이 모든 것이 걷잡을 수 없이 진행되어버린 상태라는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온난화를 늦추고, 환경을 보호하는 것에서 멈추면 안 된다. 이미 북극곰은 이전처럼 살아가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버렸고, 한 번 방향을 정해버린 자연과 환경은 쉽사리 다시 되돌아오지 않는다. 

 

 과연 우리는 어떤 것을 더 해야 하는가. 과거에 우리가 저지른 잘못을 반성하고, 새로운 변화의 흐름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피해받는 그 모든 존재들을 위해 어떤 것을 더 해야 하는가. 동화책이지만 어른들도 꼭 읽어보면 좋을 그런 책이다. 학교에 근무하는 교직원이라면 한 학기 한 권 읽기 프로그램이나, 동아리 프로그램이나, 주제중심 재구성 활동 등을 통해서 꼭 한 번 아이들에게 접하게 해 주고 싶은 그런 책이다. 

 

💡 이 글은 '창비교육'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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