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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주, 중앙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김누리 교수님을 모시고 학교에서 두 차례 강연을 들었다. 솔직히 강연 직전에 검색해서 찾아볼 때까지 어떤 분인지도 자세히 모르고 있었다. 검색창에 뜬 얼굴을 처음 마주했을 때, '어 왜 이렇게 낯이 익지?' 정도의 느낌만 받았을 뿐. 낯이 익었던 이유는 검색창 이전에 TV 화면으로 한 번 마주했었기 때문이었다. 평소 자주 보는 '차이 나는 클라스'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강연을 해주셨던 모습을 얼핏 기억하고 있었나 보다. 아무튼, 그날 이루어진 두 차례의 강연으로 아직까지도 무언가 알 수 없는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세를 불려 나가고 있다.

 

 매번 선거철이 다가오면 "만들겠습니다", "바로 잡겠습니다", "되찾겠습니다"하는 등의 문구로 세상이 가득 채워진다. 어찌나 잘못된 것들이 많은지 새로 만들고, 바로 잡고, 뒤집어 되찾아야 할 것들이 태산인가 보다. 사실 정치를 떠나서 생각해보아도 잘못된 것들은 엄청나게 많다. "올바른 시민의식이 필요한 때입니다."라는 멘트로 마무리되는 수많은 기사들, 뉴스의 꼭지들. "우리나라가 그렇지 뭐"로 시작하며 달리는 무수한 댓글들. 그렇게 잘못된 것들이 많고, 누군가는 지적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음에도 결코 나아지는 건 없다. 기술이 발달하고, 건물이 높아지고, 모든 것의 속도가 빨라져도 그 속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결코 쉽게 바뀌지 않는다. 

 

 왜일까. 우리는 아무것도 바꿀 수 있는 힘이 없기 때문이다. 시민운동을 하고, 캠페인을 하고, 투쟁을 해서 바꿀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맞다. 그렇게 시민들의 참여와 움직임으로 세상은 바뀐다. 적어도 정상적인 건강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 사회에서는 말이다. 하지만 현재의 우리나라는 단언컨대 그렇지 않다. 불편함에는 짜증을 앞세우고, 캠페인에는 귀찮음을 앞세우며, 투쟁에는 정치를 가져다 붙이는 이 사회에서 그 모든 조건들을 뚫고 열심히 움직인다고 하더라도 바뀌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이 사회에서는 1등을 위해 모든 힘을 몰아주었으니까. 다른 모든 사람들이 열심히 움직인다고 하더라도, 1등들이 모인 그 집단에서는 쉽게 우리의 뜻을 아는 체하지 않는다. 

 

 학교에서 1등을 하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무엇이 될까. 의사가 되고, 판사와 검사가 되는 비율이 상당히 높다. 물론 지금은 얼추 달라지기는 했지만. 공부를 잘하면 성적에 반비례해서 자연스레 꿈이 좁아질까? 성적을 잘 받은 게 아까워서 모든 것들을 포기하고 남들 다 하는대로 유명한 대학의, 말 그대로 권력과 돈이 뒷받침되는 직업을 찾아가는 것인가? 노력에 대한 보상은 당연한 것이다. 다만, 그들 스스로가 애써 녹여낸 수년간의 노력에 대한 보상심리를 다른 사람에게, 이 사회 시스템에 투영시켜서는 안 된다. 그건 비겁한 짓이다. 어마어마한 노력을 쏟아 돈과 권력과 명예를 얻을 수 있는 직업에 안착하는 데 성공했다면 그건 충분히 축하할 일이지만, 그 힘으로 자신들의 시스템을, 권력을, 특히나 돈을 공고히 하는 성벽을 쌓아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혹시라도 우연히 이 글을 보게 되는 힘과 돈과 권력을 가진 분이 있다면 잘 생각해보시기 바란다. '나는 그렇지 않은데, 너무 일반화가 심하다'라고 생각하신다면 미안하다. 나도 모든 사람을 싸잡아 비난하려는 것은 아니다. 정중히 사과하겠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찝찝한 문구가 본인에게 다가온다면, 충분히 고민해보라. 그리고 미안하다. 이 사회도, 이 시스템도 당신이 만든 것은 아니기에, 그저 일원으로 들어가 젖어들어버린 것이기에 당신을 탓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작년 의대생 파업이 연달아 이루어지던 때, 대한의사협회 산하기관인 의료정책연구소가 공개했던 홍보자료다. 그들이 원했던, 사람들이 선택할 것으로 예상했던, 답은 A다. 하지만 도대체 매년 전교 1등을 놓치지 않기 위해 공부에 매진한 것과 의료 서비스와 어떤 관련이 있다는 건지 모르겠다. 그저 매년 1등을 놓치지 않기 위해 보냈던 허무한 학창 시절을 보상받기 위해 저런 선택지를 넣었다고밖에 다른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사람들의 반응 또한 비슷했다. 각종 언론과 여론의 비난을 받고서야 문항을 수정하여 다시 올렸다. 해당 문항에 대해서도 논란이 일기는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1등 했다는 이유로 의사가 되어 각종 사회적 보상을 요구하는 A 의사보다는, 성적은 모자랄지언정 '의사가 되고 싶어' 의사가 된 B의사에게 진료를 받고 싶다.)

 

 의사 이야기를 자꾸 해서 혹시라도 글을 읽으시며 불편한 의사분들이 계실까 걱정이다. 우리 사회에 의사뿐이겠는가. 요즘 한창 이슈가 되고 있는 검사들도, 정치인들도 다 매한가지 아닌가. 그들은 우리의 삶, 우리가 필요한 변화에 관심이 없다. 그러니 우리가 어떤 행동을 취하고, 어떤 캠페인에 투쟁을 이어가도 당장 바뀌는 것은 없다. 그들이 변화를 허락해줄 때, 변화를 만들어나갈 때에야 우리도 슬그머니 함께 변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그렇다. 

 

'1등을 위한 나라', '1등이 모든 권력을 소유하는 나라'를 뒤집어엎으려면 상당히 많은 것들이 변해야 할 것이다. 내가 볼 때, 가장 간단하고 쉬운 방법이 우리나라 공교육을 뜯어고치는 것이다. 경쟁하지 않는 학교, 굳이 순위를 매겨 순서를 지어주지 않아도 되는 학교. 꼭 1등이 의대를 가고, 서울대를 가지 않아도 되는 그런 사회. 적어도 학교가 치열한 전쟁터가 아닌, 친구들과 함께 하는 광장의 역할로 인식되는 그런 나라.

 

단 하나, 입시제도부터 바뀌어야 한다. 적어도 1~2년 이내에 입시제도 변화에 대한 큰 논쟁이 일어날 것이다. 그때, 잘 살펴보시길 바란다. 공교육을 뜯어고치지 못하게 막는 자가 누구인지, 입시의 변화를 막고자 하는 자가 누구인지. 그들은 1등이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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