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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 그리고 앞으로 해야 할 것을 항상 고민하며 살 수밖에 없는 세상이다. 특히나 진로를 한 두 번의 선택으로 결정해야 하는 우리나라에서는 그 모든 부담과 짐을 10대 학생들의 몫으로 떠넘기고 있다. '우선 대학에 가면~', '우선 수능을 보면~', '지금까지 한 게 아깝지 않니, 그러니까~'와 같은 말들로 진로를 고민하고 바꾸고 결정하기는커녕 스스로 책임지지도 못하게 할 거면서 말이다. 

 

 주인공 '바림'이는 초등학생 때부터 미술에 몰두했다. 그저 친구가 다니던 미술학원이 재미있어 보여서 시작한 '미술 인생'은 어느덧 고등학교 3학년을 앞둔 시점까지 이어져왔다. 미술에 대한 '바림'의 좋고 싫고 같은 판단도 하지 못할 만큼 미술은 '바림'에게 산소와 같은 것이었다. 마치 우리가 산소가 숨을 쉬게 해 주므로 좋다거나, 산소가 싫다는 판단을 하지 않으며 살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바림'은 미대 입시를 준비하는 상황에 처해진다. 기계처럼 구도를 구상하고, 색을 섞고, 물감을 덧입힌다. 사물을 보면 '예쁘다', '아름답다'는 표현보다 '램프 블랙', '울트라 머린' 등 색상 이름이 먼저 떠오를 지경이다.

 

 어느날 '미술' 그 자체의 인생을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바림'은 오른손 인대가 늘어나는 부상을 입은 김에 이모가 살고 있는 시골로 떠난다. 어릴 적 추억이 흐릿하게 남아 있는 곳. 이 책 '챌린지 블루'는 시골에서 '바림'이 만나는 사람들, 겪는 일들을 통해 스스로의 삶에 대해 고민하고 방향을 정해 가는 그러한 과정을 그려나가고 있다. 

 

고작 열아홉일 뿐인데, 10년이 지나도 스물아홉일 뿐인데, 사람들은 너무 쉽게 늦었다 말했다. 열여덟에 처음 그림을 시작한 해미에게도, 그림을 그만두려는 바림에게도 모두 다 같은 말을 했다.

 

 늦음과 빠름은 누가 정해주는 걸까? 어떤 기준에 따라 늦음과 이름을 판단할 수 있을까. 정확히 알 수 없음은 분명하지만 암묵적인 약속은 있는 것이 분명하다. 대부분은 우리나라가 제도로서 취하고 있는 '입시', 그 자체가 기준이 되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학창 시절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몇 되지 않는 것 같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일부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들만이 학창 시절의 중요함을 '입시'와는 별개로 떠올리고 있는 것 같다. 물론 그 일부 사람들이 꼭 전부 교사인 것도 아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학생들은 적어도 스무 살이 되는, 성인이 되기 전까지 자신의 진로를 결정해야 하는 문제를 직면한다. 어쩌면 일부 진로는 중학교를 졸업하는 순간에 이미 결정되어 버리는 경우도 있지 싶다. 

 

 이러한 방식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이상하다. 이런 방식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으면서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입시'를 기준으로 아이들을 늦었다고 재촉하며, 성숙하지 못한 결정을 하도록 내몰고 있다. 10년이 지나서 스물아홉이 되었을 때 하고 싶은 '미술'을 본격적으로 하면 안되는 걸까? 미대에 들어가는 경쟁에서 불리하니까? 미술을 하려면 꼭 미대에 들어가야 할까? 미대에 가면 미술이 재미있어질까? 내가 하고 싶은 미술은 미대에만 있는 걸까?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주장을 '세상 물정 모르는 막연한 헛소리'로 치부할지 모르겠지만, 잘 생각해보라. 여러분의 인생을 행복하게 해주는 결정이 정말 열아홉에 이루어졌는지. 그저 남들처럼 순서에 맞추어, 절차에 맞추어, 시기에 맞추어 흘러가는 '평범한' 삶을 우선시하는 것은 아닌지.

 

후회? 후회는 회전목마와 같은 거야. 끊임없이 되돌아오거든. 어떤 날은 '그래, 내 선택이 옳았어.'라고 자신하다가도 또 어느 날은 대체 '내가 왜 그랬을까.'라며 땅을 치고 후회하지. 바림아 어른이 된다는 건 말이야. 완벽한 선택을 하는 게 아니야. 그냥 후회 자체를 자연스레 받아들이게 되는 거지. 그것 역시 신중한 선택이었다고. 그 순간을 결정한 스스로를 존중하는 거야. 그러니까 네가 결정한 일에 후회가 남을까 두려워하지 마. 그것마저 받아들여. 그리고 잊지 마.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야.

 

 이 책을 통틀어 가장 인상깊고, 진심으로 와닿았던 내용이다. 사람들은 매 순간 고민을 하고, 결정을 한다. 모든 결정은 짧게나마 합리적인 이유를 동반하다. 결정과 그 이유는 종종 등장하는 순서가 바뀔 때도 있지만, 중요한 건 언제나 함께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가 내리는 모든 결정은 단 하나도 헛되지 않다. 그리고 그 결정에 따라 내 삶의 진행 방향은 또 한 번 조금 옆으로 옮겨간다. 어른이 되면 그만큼 학창 시절 때보다 선택에 익숙해진다. 그러나 그만큼 선택할 문제의 크기는 커진다. 어른이 되어도 선택이 두렵고 다가올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는 것은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하지만 선택을 하지 않고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다. 완벽한 선택이란 없다는 것 또한 모두가 알고 있다. 어떤 선택을 하던 작거나 큰 후회를 하게 된다는 것도 모두가 알고 있으며, 그 후회를 어떻게 다루느냐가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판단하는 잣대가 된다는 것 또한 모두가 알고 있다. 우리 모두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 나의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선택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왜냐하면 언제든 다시 시도하고, 다시 돌아가서 결과를 뒤집을 기회는 반드시 멀지 않기 때문에. 

 

 선택과 결과, 그리고 후회에 대한 이야기를 솔직하게 전해주고, '그러니 너무 걱정 말고 충분히 고민해보고, 하고 싶은 결정을 내려봐'라고 신뢰를 힘껏 전해주는 것이 어른의 역할이 아닐까 싶다.

 

"저녁에서 밤으로 넘어갈 때 하늘빛 알아?"
"미드나이트 블루"


"그럼 밤에서 새벽으로 가는 하늘빛은 뭐라고 해?"
"글쎄. 뭐라고 그러는데?"
"검은 빛이 도는 푸르스름한 청색. 네가 말한 미드나이트블루와 같아. 그런데 새벽을 여는 하늘은 훨씬 밝게 보여."
"왜?"
"다들 시작의 눈으로 보니까. 하늘이 열리고 모든 것이 깨어난다고 생각하잖아. 그러니 당연히 저녁 빛보다 훨씬 밝게 느껴지겠지."

"새벽 푸름을 나타내는 '돈 블루(Dawn blue)'라는 색이 있어야겠네."

"새로운 하루를 도전한다는 의미에서 '챌린지 블루' 어때?"

 

💡 본 게시글은 '창비'에서 무료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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