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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새로운 학교를 개교하는 일에 참여하여 여러 논의를 한 경험이 있다. 그 결과 학교는 올 3월 2일 무사히 개교를 하였고, 지금은 그곳에 근무 중이다. 학교를 세운다고 막연히 생각을 해 보자. 어떤 교육을 하고, 어떤 철학으로 아이들을 마주 할까에 대한 고민이 크겠지만, 가장 큰 과제는 바로 시설이다. 학교의 구조와 틀을 갖추는 과정에서 아이들을 대하는 교사들의 철학이 반영되는 부분도 분명히 있지만, 실제로는 그 과정의 반대로 진행되는 경우가 참 많다. 학교가 모두 지어지고 난 이후에 실제로 근무할 교사들이 발령을 받게 되고, 2~3주 정도의 짧은 기간을 거쳐 철학을 세우는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우리 학교는 개교 전, 2년이라는 꽤 오랜 기간을 함께 고민하는 과정을 거쳤다. 물론 그 과정에서 시설 설계도 함께 진행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반영이 된 부분도 있고, 반영이 되지 않은 부분도 있겠지만, 그 과정에 함께 의견을 낼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의미있는 활동이 아닐까 싶다. 그런 고민과 수많은 회의 끝에 만들어진 학교임에도 공간의 변화, 새로운 공간의 구성 등 아쉬운 부분은 남기 마련이다. 

 

뿌듯함과 아쉬움을 동시에 가진 채로 근무를 시작했고, 우리 학교는 '공간 혁신'이라는 새로운 임무를 찾아 맡기로 했다. 위에서 언급한 공간의 변화, 새로운 공간의 구성을 위해 함께 고민하고 노력하자는 의미에서였다. 그런 과정 속에서 어느날 창비에서 보낸 문자를 받았다. 모두에게 전달된 문자인지, 이전에 서평을 썼던 계기로 전달받은 문자인지는 모르겠으나, 여러 책들 중에서 한 권을 골라 서평을 부탁한다는 내용이었다. 관심이 가는 책들이 많았음에도 단연 눈에 띄는 책이 바로 이 책, '학교 공간, 이렇게 바꿨어요!'였다. 

 

'학교 공간, 이렇게 바꿨어요!' 미래 학교 만들기 프로젝트

우리 학교의 공간을 더욱 탄탄하게 채워나가기 위해 충분히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실제로 책을 받아보았을 때, 기대감은 확신이 되었다. 이 책은 많은 여러 학교의 공간 혁신 사례를 보여주고 있는데, 그 공간의 변화가 일어나게 된 이유, 방향, 고민 지점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도록 제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혁신'은 미래를 앞당기는 행위이다. 현재에 충실하면서도 최선의 노력으로 꿈을 현실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 바로 미래이다. 학생에겐 그 장소가 학교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혁신'이란 말을 10년 전부터 아무 곳에나 가져다 붙이는 바람에 구닥다리의 느낌이 나기는 하지만, '혁신'의 말 뜻은 정반대다. 묵은 풍속, 관습, 조직 등 구닥다리의 것들을 완전히 바꾸어서 새롭게 한다는 뜻이다. 아이들에게 미래를 알려주고, 미래의 꿈을 하나 둘 실현시켜주는 장소로서의 학교가 이전의 교육과정, 이전의 문화, 이전의 습관과 이전의 고집을 이어나간다면 과연 그 장소에서 일어나는 교육을 신뢰할 수 있을까? 이는 '공간'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도 마찬가지다. 

 

이 설계도의 미끄럼틀은 학생과 학부모가 매우 원한 공간이었으나 안전상의 이유로 허가가 나지 않아...

공간을 만드는 과정에 참여해보니 생각보다 조건이 까다롭다는 생각이 지속적으로 들었다. 여러 상황과 다양한 요구를 배려하며 함께하기 위해 만들어진 다양한 인증과 조건들을 맞추어가며 공간을 구성해야 한다는 것을 나는 너무나도 늦게 깨달았다. (물론 누구도 먼저 이야기해 주지 않았다.)

 

우리가 구상한 여러 가지 '멋진' 공간은 대부분 어떠한 인증에 통과하지 못하는 '실현시킬 수 없는' 공간이었다. 그러한 과정을 겪으면서 인증이 너무 과하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나름의 이유로, 충분한 논의 끝에 생겨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이러한 공간을 논의하는 자리에 인증이나 시설 설계를 잘 알고 있는 담당자가 왜 오랫동안 함께하지 못했냐는 점이다. 다양한 아이디어는 일방적으로 전달되었다가, 다시 일방적으로 '불가' 딱지가 붙은 채 되돌아왔다. '어차피 의견 내도 안돼'라는 위험한 생각이 스멀스멀 떠오르기 시작했다. 

 

모든 공간 혁신 과정에는 '전문가'가 포함되어야 한다. 이 책에 소개된 다양한 사례들을 보더라도 학교 구성원과 전문가의 만남 과정은 길고 다채롭다. 아이디어를 살리면서, 안전을 보장하며, 설계의 용이성을 고려하는 멋진 설계 어벤저스를 구성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학교 공간은 오랫동안 크기나 모양에 큰 변화가 없었다. 네모난 틀 속에 반듯이 줄지어 앉아 있는 모습은 일부 학교들을 기점으로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학생들에게 창의적이고 열린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충분한 환경과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 교사와 학교의 의무이자 교육의 의무이다.

새로 짓는 학교의 색깔은 화사해지고, 모양새는 세련된 느낌이 든다. 누가 보아도 새 '학교'구나 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런데 조금만 꼬아 생각을 해 보면, 저기 저 건물이 '학교'라는 것을 그 누가 보아도 안다는 것이다. 학교를 항상 학교답게 지어내고 있는 것이다. 운동장의 크기는 작아지고 있지만, 운동장을 앞에 두고 4층, 5층 정도 되는 길쭉한 건물을 두겹 정도 겹쳐둔 그 전형적인 건물의 모양 말이다.

 

[중앙일보] 삼각지붕에 정원만 19개... 쇼핑몰 아닙니다, 학교입니다. [한은화 기자] 2021.03.13 05:00

[기사 링크]news.joins.com/article/24010923

최근 인터넷 기사와 블로그 등 각 부분에서 소개가 되어 유명해진 학교가 있다. 서울 영등포구의 신길중학교다. 기사에 따르면 "저 학교에 보내고 싶어서, 다섯 살인 손녀가 클 때까지 이 동네에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는 주민이 생겨날 정도다. 물론 학교의 생김새 하나로 이목을 끌고, '다니고 싶은 학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공간의 생김새가 드러나지 않는 학교의 각 부분들의 혁신적인 면모를 보여준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변하기 어렵디 어려운 공간의 형태를 뒤집어 버렸으니, 철학의, 학교문화의, 학생문화의 변화는 얼마나 쉽겠는가.

 

이 책에는 이렇게 공간이 변함으로 인해 이끌어낼 수 있는 철학의 변화, 과정의 변화, 마음가짐의 변화 그리고 중요한 아이들 생활의 변화 사례들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변화의 필요성부터, 변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논의했던 것, 그리고 변화하고 난 이후의 결과까지 자세히 다루고 있다. 

 

나는 공간의 중요성을 믿는다. 공간이 가지고 올 수 있는 엄청난 후속 변화를 믿는다. 그 변화 속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더욱 역동적인 변화를 위해 지금도 많은 선생님들이 학교에서 노력 중이다. 학교 공간에서 즐거운 변화가 앞으로도 쭉 이어지면 좋겠다.

 

💡 본 게시글은 출판사 '창비'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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