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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19가 모든 것을 뒤바꾸어 놓았다. 지난 2년 동안 사람들의 웃음이 사라졌다 다시 돌아왔는지는 모르겠으나, 마스크에 가려 보이지 않는 것은 여전하다. 학교에서도 아이들은 어쩌면 이 것이 새로운 기준이 되어버린 듯 자연스레 살고 있다. 마스크가 답답하다며 눈치를 보며 조금씩 요령을 피우던 아이들도 이제는 더 이상 없다. 모두가 내 몸인 것처럼 마스크와 함께 하고 있다. 학교란 원래 이렇게 정적이고, 답답한 공간이라고 아이들은 배우고 있다. 

 

 이러한 답답하고 서글픈 상황 속에서 희망의 언어로 조금이나마 따뜻함을 전하고자 하는 노력이 있다. 그중 한 갈래로 이 시집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을 지은 이삼남 선생님께서는 긴 고3 담임 생활을 겪으며 입시의 답답함과 교육 현장의 텁텁함을 몸소 느끼셨다. 학교가 그래서는 안된다며, 밝고 모두가 얽히는 그런 곳이어야 한다며 희망의 언어를 전파하고 계신다. 이러한 선생님의 철학과 코로나19라는 무거운 상황이 만나 '나와 떡볶이'라는 새로운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이 책은 청소년들이 겪는 사소해 보이는(다만 그들에게는 전부와도 같을 법 한) 마음 쓰임이나, 교실에서 주고받는 상호작용에 대한 이야기를 다양한 시각에서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 책에 담긴 여러 시 중에서 유독 눈길이 가는 시를 몇 편 골라 보았다. 

너와 떡볶이 중 '어른들은 모른다', 53p

 어른들은 항상 '큰 일'을 한다고 한다. 아주 중요한 일이라 아이들이 끼어들어서도 안되며, 아이들의 일과 비교할 수도 없는 '큰 일'을 한다며 으스댄다. 떨어지는 주식 시세가, 내가 지지하는 정당 지지도가, 우리 아파트 가격이, 자녀의 성적이 어른들 자신을 살리고 죽이는 냥, 그것이 오로지 전부인 냥 살아간다. 

 

 어른들도 어렸을 때가 있었다. 어렸을 때의 어린 고민이 있었다. 늘어나는 여드름이 고민이었을 것이고, 짝사랑하는 사람의 잠수 기간이 걱정될 것이며, 그 사람 주변에 많아지는 라이벌들이 신경 쓰이고 세상의 전부처럼 느껴지는 적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나'를 살리고 죽이는 냥, 그것이 오로지 전부인 냥 살아왔을 것이다. 

 

 고민과 걱정의 크기를 비교할 필요는 없다. 그저 이해해주고, 고민하고 있다는 것 자체를 인정해주기만 하면 끝나는 일이다. 인간이 하는 고민과 걱정의 90% 이상은 일어나지 않을 일에 대한 불필요한 걱정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저 인정해주면 되는데, 그 한순간 '어른'으로서 으스대고 싶은 순간, 그 한마디에 모든 것은 결정된다. 

 

'어른들은 모른다.'

 

나와 떡볶이 중 '온라인 클래스5', 63p

 온라인 클래스와 관련된 부분이 조금은 더 쉽게 와닿는 듯하다. 학교를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상황을 우리 모두는 이번 코로나19를 통해 처음 마주했다. 모든 어른들은 학교를 '공부하는 곳'이라 쉽게 정의한다. 나는 이전부터 그러한 생각에는 반대해왔다. 

 

 학교는 공부'도' 하는 곳이다. 물론 공부가 제1의 목적은 아니어야 한다. 국어, 사회, 수학, 도덕 등의 과목 내용을 가르치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라는 생각을 항상 해왔다. 그 내용을 가르치는 그 '과정' 자체를 통해 아이들이 사고하는 능력을 길러주고, 친구와 대화하는 경험을 시켜주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신장시켜 주는 것이 참된 목적이라 생각했다. 나는 교사로서 교과의 내용과 평가라는 과정을 통해 덧셈과 뺄셈을 기껏 가르치려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이들이 맞닥뜨리는 여느 상황에 당황하지 않고 맞서며,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자신감과 태도, 해결 능력을 기르고 싶은 것이었다. 

 

 온라인 클래스를 통해 이런 생각에 훨씬 많은 확신이 들었고,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하기 시작한 것 같다. 학교에 가지 못한 며칠 사이에, 결핍이 생긴 것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학습의 결손이 아닌 소통의 부재, 활동의 부재, 함께 함의 부재가 훨씬 크게 다가온 것이다. 

 

학교가 없는 며칠을 보내자, 사람들은 진짜 학교를 깨닫게 되었다.

 

나와 떡볶이 중 '말이 된다', 50p

 요즘 나는 '실패할 수 있는 기회'에 집중하고 있다. 물론 잘 안된다. 실패하면 세상이 망하는 것 같고, 어지럽고 화가 난다. 내 능력이 이것밖에 되지 않는지 답답하고 불안해지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항상 실패하고 또 태연해지려고 노력한다. '하란 대로 해도 안 되는 게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어른들에게는 참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아이들에게는 또 아니다. 아이들은 쉽게 실패를 하고 넘어갈 수 있다. 

 

 다만 가장 중요한 전제 조건이 있다. 실패를 하고 또다시 아무렇지 않게 도전할 바탕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 '하란 대로 해도 안되네'를 인정하고 '그럼 안 해'가 아니라, '이걸 바꿔서 다시 해 볼까'의 바탕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 설명서와 씨름하는 아이에게 '그냥 마음 가는 대로 해봐'라고 말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진 어른이 되고 싶다. '뭐가 잘못된 것 같아? 그럼 다시 해볼래?'라고 기회를 제공하는 어른이 되고 싶다. 

 

'이게 문제인 것 같아요. 다시 해 볼게요'라고 실패를 통해 꾸준히 도전하는 아이를 기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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