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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은 누구에게나 두려움이 되기도, 용기를 다짐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처음' 맞는 오늘은 새로움이 연속이다. 그런 처음과 처음이 모여 '아 오늘도 별 일 없이 지나갔네'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이번 주도 별일 없겠구먼' 하면서 처음 맞는 내일을 '그저 그런 하루'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그것이 좋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어른이 되면 대부분 그렇게 되는 것 같다. 

 

어른이 되기 전, 그러니까 청소년의 '처음'은 얼마나 어려웠을까. 대부분의 시간이 학교로 채워져 있을텐데, 그마저도 매년 같은 것은 거의 없다. 이제는 중학생이니까, 이제는 중3이니까, 이제는 고등학생이니까, 이제는 고3이니까. 매번 새로운 처음을 겪어내야 한다. '처음'이라는 조건에서 오는 감정들을 잘 담아낸 시집이라 생각한다. 

 

시인은 "세상에 쓸모없는 것은 없다. 나는 쓸모없는 것의 쓸모를 잘 알고 있다."며 이야기한다. 이 말처럼 이 책에는 청소년기에 겪었던 여러 '첫' 이야기들, '첫' 감정들이 그려져 있다. 이 글을 읽고 난, 이미 여러 번의 '첫' 이야기를 겪은 어른들의 목소리를 들어보고 싶은 작품이다. 

초등학교에서 담임을 맡다보면 정말 다양한 학생들을 만나게 된다. 나도 사람인지라 아주 '인상 깊은' 학생은 기억에 오래도록 남는 것 같다. 더군다나 그 학생의 부모님까지 인상 깊었다면 더더욱. 한 번은 아이가 학교에서 매일 피곤해하고, 시무룩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게 된 적이 있다. 아이와 이야기를 주고받자, 새벽 5~6시에 일어나서 공부를 한다고 한다. 그 이유는 엄마가 공부를 시켜서라고. 하지만 피곤함 속에서 가지게 되는 공부시간 중 대부분은 게임을 하면서 쓴다고 했다. 엄마가 깨어나기 직전에 수학책을 펼친다고. 차라리 그 시간에 공부라도 하는 이 시 속 민수가 더 편안해 보일 지경이다. 

 

질풍노도의 시기, 방황의 시기, 자신을 찾아가는 시기라고 청소년기를 표현하곤 한다. 조금만 참으면 해결될 거라고, 대학 가면 뭐든 다 이루어진다고. 그 때가 좋은 거라고.. 

 

나는 어른이 된 지금도 문득 떠나고 싶다는, 사라지고 싶다는, 모든 것이 멈추고 마냥 쉬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벌써부터 기억이 잘 나지 않긴 하지만, 예전의 나는 더욱 그런 것들을 많이 느꼈겠지. 나는 청소년들에게 오롯이 혼자서 생각할 시간과 장소와 기회를 주기적으로 제공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고민하지 않는 청소년은 없다. 아니 고민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누구든 고민의 종류에 따라 다를 순 있겠지만 고민 자체는 존재한다. 자유가 없음에 대한 고민, 성적에 대한 고민, 살아가는 이유에 대한 고민, 진로에 대한 고민 등 쉽게 여길 수 있는 주제는 없다. 주변에서 충분한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충분함'이라는 것은 고민의 주인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내 경험상 만족스러울 만큼 충분한 도움을 받았던 기억은 없다. 그저 내가 '에라 모르겠다'거나, '그래 뭐 어쩌겠어'라며 단념해왔을 뿐. 

 

'에라 모르겠다', '그래 뭐 어쩌겠어'라는 단념도 고민의 폭풍 안에서는 떠올릴 수 없는 것들이다. 잠시 고민의 폭풍에서 구조해 줄 필요가 있다. 시 내용처럼 속초 바다가 될 수도 있고, 동네 카페가 될 수도, 방해받지 않는 내 방 안이 될 수도 있다. 학생들의 고민을 재단하고 깎아내리지 말며, 인심 쓰듯 해결책을 내놓지 않는 어른이 되자. 고민의 주인이 고민을 버릴 수 있도록 기다려주자.

 


각자 본인이 겪은 청소년기를 떠올려보자. 어떤 기억이 남아있는가? 슬프고 답답한 기억인가, 애매하고 복잡한 기억인가, 뿌듯하고 풍성한 만족의 기억인가. 어떤 기억이 남아있던 그 기억 때문에, 기억 덕분에 우리는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 다시 한 번 작가의 말에 공감한다. 

 

"세상에 쓸모없는 것은 없다. 나는 쓸모없는 것의 쓸모를 잘 알고 있다."

 

💡 이 글은 '창비'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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