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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때 동아리로 교지편집부를 했었다. 봉사활동 시간을 준다는 이야기에 생각 없이 들어갔는데 재미가 붙어 꽤 열심히 활동했던 기억이 난다. 고등학교 2학년 겨울, 두 번째 교지를 낼 즈음 담당 선생님께서 겉표지나 챕터 사이사이에 들어갈 짧은 글마디를 적어달라고 했다. 그 당시 나의 생각이나 상황 등에 대해 짤막하게 기록을 하고 있었던지라 큰 고민 없이 글 몇 개를 다듬어서 제출했다. 내 글이 표지가 된 교지가 나온 것을 보며 뿌듯해하던것도 잠시, 집안일과 입시 등으로 바빠져 글쓰는 것은 잊고 지냈다.

 

이제 도전 하면 무도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현실...

 

 다시 글을 써봐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은 20대 후반쯤이다. 사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에 떠밀려 '살아지는'느낌이 들었다. 생각없이 흘려보내는 순간들, 감정들을 기억해두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선 기록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펜을 잡고 노트에 글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고등학교때 쓰던 느낌의 글은 써지지 않았다. 18살과 28살의 나는 꽤 다른 사람이었다.

 

 사진은 흘러가는 시간의 한 순간을 잡아 두는 것이라고 비유한 글을 본 적이 있다. 어느 한 시점의 내 생각이나 마음을 기록해둔다는 점에서 글쓰기도 맥을 같이 하는 것 같다. 고향집의 내 방에 가서 옛 노트들을 찾아봤으나 글을 모아둔 곳은 사라지고 없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는 이제 내 머릿속 단편으로만 남아있어 아쉬웠다. 그래서인지 이 책의 소개글이 눈에 확 들어왔나보다. 시인은 자신의 청소년때를 회상하며 시를 모았다고 한다.

 

"몸이 기억하는 놀이가 시라고 생각한다. 개구리 울음, 반짝이는 논물이 미적지근하듯 나의 청소년 시절도 그러했다. 뜨겁도록 강렬한 것이 없었다 모르는 것이 많아서 알아도 아는 체를 하지 못했다. 그렇게 청소년 시절은 잘하는 것 하나 없이 설렁설렁 보냈다고 생각했는데, 어머니는 나를 키우는 '재미'로 살았다고 한다. 이번에 청소년시집을 준비하면서 나의 과거를 톺아보는 재미가 있었다. "

- 시인의 말 중

 

 

'그때의 난 어땠을까?'

희미해진 기억과 감정을 가지고 시들을 읽어나갔다.

 

 

 학생때는 학교와 집, 친구들이 내가 알고 있는 세계의 전부였다. 하루의 많은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니 친구들과 많은 시간을 보낸다. 함께 앞으로 나아가는 든든함이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 친구들이 경쟁자가 되어버리는 순간이 있다. 바로 시험이다. 어떤 선생님들께선 시험을 선의의 경쟁 혹은 스포츠맨십 등으로 미화하기도 했지만 같은 친구들인데 등수, 등급이 갈리는 기분과 그 와중 위로 올라가려고 아등바등하는 내 모습을 보는 것은 그리 좋은 느낌은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시험시간은 늘 적응이 되지 않았다. '영화 배틀로얄의 총성없는 버전'이라 생각했었다.

 

 

 선생님들은 조회시간이나 수업의 처음부분에 출근하면서 있었던 일, 출장을 다녀오게 되어 수업이 바뀌는 내용, 학교 회의의 결정이 이렇게 되었다는 등 선생님이나 학교의 사정에 대해 설명하고 이야기할 기회가 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그런 기회가 잘 주어지지 않는다.

 

 아무렇지 않게 학교를 다니고 수업을 받는것 같지만 아이들도 그 나름의 사정들이 있고 각자 짊어지고 가는 삶의 무게가 있다. 어른들에게 이야기하면 '그런 생각 하지 말고 공부나 해'라는 이야기를 들을지도 모르나 그들에게는 나름 진중한 삶의 문제일 수도 있다. 야자시간에 운동장에서, 수련회날 침상에 누워서 친구들과 나눴던 이야기는 가볍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유쾌하게 지내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지나간 시간이 추억으로 보정되어 좋게 느끼는 것도 있겠지만 힘들든 아니든 즐겁게 보냈다.

 

 시를 하나하나 읽어나가면서 자연스럽게 학생 때를 돌아볼 수 있었다. 학교에서 있었던 에피소드 보다는 내가 그 당시에 했던 생각들이 많이 떠올랐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되는 생각을 많이 했던것 같다가도 그런 생각들을 하며 막연히 불안했던 하루하루를 버터내지 않았나 싶다.

 

세상에 쓸모없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쓸모없는 것의 쓸모를 잘 알고 있다. 이 시집을 읽는 친구들이 쓸데없는 질문을 많이 하면 좋겠다."

- 시인의 말에서

 

 화산 지대의 민달팽이처럼 삶의 형태가 바뀔지언정 묵묵히 나아가는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이 글은 '창비'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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