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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학 전 마지막주 수업이었다. 이번 학기의 마지막 시간이라 약간 여유를 두기로 했다. 아이들도 방학을 앞두고 들떠있었다. 가장 재미있었던 수업을 찾아보고 한 학기를 마무리하는 말과 2학기 수업 계획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을 하던 중이었다. 한 아이가 손을 들고 말했다.

 

"선생님은 방학때 뭐하세요?"

대답을 하지 못했다.

"음...뭐할까? 잘 모르겠는데?"

 

 수업을 마치고 발령 후 지나온 10번의 방학동안 계획을 세워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번 방학은 어떻게 보내야 할까?

 

 방학동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음 학기를 위한 마음의 여유를 최대한 확보해 두는 것이라 생각했기에 처음 3년 정도의 방학은 아무것도 안하고 숨만 쉬며 보냈다. 동기들이 연수를 들으러 가자고 하거나 공부를 같이 하자고 해도 응하지 않았다. 아주 조금이라도 더 쉬어두고 학기를 맞이하는게 목표였다. 익숙하지 않은 학교는 끝없는 소모의 연속이었고 혹시라도 학기중에 바닥을 보이면 곤란해질 것이라 생각했다. 방학을 활용해 공부를 하는 선생님들을 보면 대단하다는 말만 나왔다.

 

 4번째 해를 보내면서 방학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교대를 졸업하면 교사는 2급 정교사 자격증을 부여받는다. 이 자격증을 받으면 교사로 일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2급 정교사 자격증을 소지한 채로 3년여의 경력을 쌓으면 1급 정교사 자격 대상자가 된다. 1급 정교사 자격증을 소지하기 위해서는 연수를 들어야 하는데 연수는 3주동안 진행된다. 교사의 일정을 고려했을때 여름방학이 연수 시기가 되었다.

 

 '나의 여유없음은 고스란히 교실에 영향을 줄텐데'

 '11월 즈음에 소진되어 우리 반 아이들을 잘 돌보지 못하면 어떡하지?' 

 

 연수를 시작하기도 전에 지쳐서 시작할 2학기가 걱정되었다. 너무 가기 싫었다. 하지만 걱정과는 달리 연수는 정말 유익하고 즐거웠다. 비슷한 경력의 선생님들과 서로의 학교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고, 공부를 하면서 생각할 거리도 많이 가지고 돌아올 수 있었다. 걱정과는 다르게 2학기도 잘 보냈다. 나도 다른 선생님들처럼 방학때 연수도 듣고 공부도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하지만 작년, 코로나가 터지고 방학동안 다음 학기의 온라인 수업을 만드느랴, 학교의 개교준비를 하랴 1년을 보내버렸다. 계획을 세우기도 전에 내 달력은 일정으로 가득 차버렸다.

무려 내가 공부를 했다

 10번의 시행착오를 보내고 11번째, 나는 나를 위한 공부와 학교 업무와 약간의 휴식을 적절하게 배합한 첫 방학 계획을 세우고 있다(컴퍼스가 어디있더라ㅋㅋ).

 

 학기 중에는 선생님도 아이들도 학교와 교실에 밀접하게 붙어있기에 자기 자신을 멀리서 바라볼 기회가 거의 없다. 그리고 학교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사는 곳이라 감정의 고착도 커지기 마련이다. 잠시 거리를 두고 감정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가족도 맨날보면 싸운다). 인터넷 창이 버벅이면 새로고침 버튼을 눌러 다시 쾌적하게 만들듯이 나도 내 맘속에 있는 F5 버튼을 잠시 누르고 와야겠다. 내 방학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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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날 여느교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