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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와서 밤에 배가 고파지면 아까 고기를 더 먹고 오지 못한 것에 미련이 남는다. 

 

퇴근 시간 전에는 시간이 너무 느리게 가는데
왜 집에만 오면 시간이 너무 빨라서
아쉬워 제대로 못 쉬고

평일 일과 중에는 시간이 너무 느리게 가는데
왜 주말만 되면 시간이 너무 빨라서
아쉬워 제대로 못 자고

장범준 '당신과는 천천히' 중에서

 

 

 퇴근 후 씻고 밥먹고 숨 조금 돌리면 시간이 8시를 휙 넘는다. 부랴부랴 운동을 하거나 책이나 넷플릭스를 기웃하다 보면 어느새 잘 시간이다. 여기서 잘 시간이라 함은 '이 시간 즈음에는 자야 내일 무리 없이 일할 수 있는 시간'을 뜻한다. 하지만 자려고 하면 왠지 못다한 것들이 있을 것만 같고 정리해야 할 생각들이 떠오르고 유튜브의 다음 영상이 재미있어 보인다. 결국 나는 '지금 안자면 내일은 파국이야'정도의 시간에 잠이 든다. 다음 날 아침에 무거운 눈을 비비며 '오늘 밤에는 꼭 일찍 자겠어'하고 다짐을 하지만 같은 일이 반복된다.

 

 그래도 정시퇴근을 하고 바로 집에 가는 날엔 괜찮다. 하지만 회식을 하거나 야근을 하는 날에는 퇴근 후의 시간이 적어지기 때문에 더더욱 남아있는 하루에 질척이며 매달리는 내 모습을 본다. 딱히 하는 것도 없는데 말이다. 주말에는 상황이 더 심각해진다. 주중에는 출근이라는 브레이크가 있지만 아무 거리낌 없는 주말에는 새벽에 자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잠못드는 이유는 하루에 대한 미련 때문이다. 

 

 미련은 마무리를 잘 하지 못해 만족스러운 마음이 들지 않을때 생긴다.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했을때나 하긴 했는데 제대로 하지 못했을때 주로 미련이 남는다고 이야기하지 않는가. 아쉬움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아쉬움은 순간 느끼지만 정리가 쉽다. 하지만 미련은 정리되지 않은 채 마음 한 켠에 남아있다가 어느새 나타난다. 

 

 미련은 지나간 것들에 대한 감정이다. 앞으로 있을 일에 미련을 느끼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아침이나 오후처럼 하루를 보내고 있는 때에는 느끼지 못한다(물론 과음한 날 아침엔 전날을 복기하긴 하지만 그건 논외로 하자). 하루가 마무리되는 때인 밤이 되면 오늘 하루가 한 눈에 들어오고 아쉬웠거나 실수했던 것들이 떠오른다.

 

 올해 개교를 하고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이제 11월이니 한 해라고 이야기하는 게 맞겠다). 초과근무는 일상이고 정시퇴근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심지어는 그걸로도 부족해 주말에도 출근하는 날이 많다. 매일매일 새로운 일들이 생긴다. 그러다 보니 출근하고 나선 늘 정신없는 상태로 보낸다. 

 

 학교에서 나는 학생들을 만나고, 교무실에서 동료 선생님들을 만나고, 학교에 있는 교직원들을 만난다. 그들과 수업을, 회의를, 업무를 함께한다. 나는 사람들과 뭔가를 함께하면서 생기는 여러 감정과 생각들을 차곡차곡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하다(처리속도가 느려서 바로바로가 어렵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머릿속이 뒤죽박죽이 되어 사람들이 이야기할때 멍하게 있게 되거나 제대로 이야기를 못듣는 상황이 생긴다. 

 

  바쁨에 고저가 있고 틈이 있을땐 퇴근 전 생각정리가 가능했다. 그래서 직장을 집에 끌고가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정리의 시간이 없는 날들이 계속되면서 어수선한 상태로 현관으로 들어서는 경우가 잦아졌다. 어수선함은 불편한 느낌으로 남고 깔끔하게 하루를 마무리하지 못했다는 미련으로 이어져 잠자리를 방해하고 있다. 

 

 다시 방학이 절실해지는 순간이 오고있다(그래 기-승-전-방학이었다). 지치디 지쳐 쓰러지기 일보 직전에 방학을 주는 느낌이다. 이번 방학땐 평소에 쓰지 못한 연가를 쓰고 혼자 어디라도 다녀와야겠다. 가서 마음을 비우고 생각을 정리하고 다시 나아갈 수 있는 상태의 내가 되어 돌아와야지. 오늘은 일찍 잘거다. 유튜브 영상 하나만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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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련&밤 하면 이 노래가 원탑 아닐까요

https://youtu.be/m7mvpe1fVa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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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날 여느교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