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도망간다는 표현을 붙이고 싶을 정도로 빠르게 지나간다. 어쩌면 가을이 곁에 와 있음을 깨닫는 때가 너무나 늦은 탓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짧은 가을은 여느 계절 보다도 더 마음 깊게 와 닿는 무언가가 있다.
학교에서의 가을은 더욱 그런 것 같다. 나는 가을이 되어야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반년 내내 지지고 볶고, 뒤엉키며 살다가도 가을쯤 되었을 때는 아이들 그 자체가 보이는 것 같다. 그 아이의 상황, 그 아이가 좋아하는 것, 그 아이의 계획까지도 이제야 보인다. 그제야 나도 느끼게 되는 것이 많다. 주로 후회다.
'이런 줄도 모르면서 나도 참 서둘렀구나'
가을은 헤어짐을 준비하는 계절이다. 이제는 함께 할 날들이, 함께 한 날들보다 현저히 적어진다.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그 순간까지 아이들에게 한결 같은 모습으로 남아야 하는 것이 교사의 숙명이라고 하지만, 교사도 사람인지라 속마음만큼은 그렇지 못하다. 속으로는 시원섭섭함을 느낀다. 시원과 섭섭의 배합 비율이 어느 정도 되는지는 해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말이다.
올해의 가을은 유독 빠르게 지나간 것 같다. 코로나19라는 듣도 보도 못한 상황 속에서 나와 아이들은 계절조차 느낄 새 없이 살아가야 했다. 오직 교과서 이름이 '봄'에서 '여름'으로, '가을'에서 이제는 '겨울'로 바뀌어 버린 것을 보며 계절을 짐작했을 뿐이다. 교과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봄나들이, 단풍구경 등의 바깥 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해 더욱 그렇지 않나 싶다. 올해의 가을은 더 많이 섭섭하다.
어른들이 '계절 변화에 무덤덤해졌다'며 이야기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나는 그렇게 되기 싫다. 누군가의 여덟 번째, 아홉 번째 가을을 온전히 함께 할 수 있으려면 그래서는 안된다. 함께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환호할 줄 알아야 하고, 함께 설레는 마음으로 수업 시간에 사용할 단풍잎을 주워올 수 있어야 한다. 올 가을을 그렇게 보내지는 못했지만.
가을 끝의 학교는 이렇다.
ⓒ 2020. TREY. All rights reserved
'🦊 TREY [학교, 오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만 몰랐던 겨울 (0) | 2020.12.23 |
---|---|
누구에게나 소중한 길 (1) | 2020.11.27 |
고요함의 소중함 (2) | 2020.11.25 |
커피가 필요한 사람들 (0) | 2020.11.14 |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0) | 2020.11.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