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간만에 음악을 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앱을 켠다. 딱히 듣고 싶은 노래도, 들으려 생각했던 노래도 없기에 '랜덤' 재생 버튼을 누른다. 내가 좋아할 만한 노래는 나보다도 인공지능이 더 잘 알고 있는 듯하다. 그러다 문득 10년도 더 지난 음악을 듣게 되었다.
'이러다 미쳐 내가, 여리여리 착하던 그런 내가'
아주 유명한 노래다.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Abracadabra'. 이 노래를 들으면 언제나 나는 한 장면이 떠오른다. 고등학교 3학년 시절에 학생인 내가 학교 건물 뒤쪽, 오르막길을 올라가는 장면이다. 왜 인지는 모르겠지만 몇 년째 이 노래를 우연히 듣는 순간마다 매번 그 장면이 떠오른다.
우리는 음악에, 소리에 영향을 참 많이 받으면서 살아간다. 기분을 나타내고, 기분을 전환하고, 추억을 떠올리기도 한다. 소리는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주는 것이 분명하지만, 가끔은 그러한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기도 하다.
음악도 소리도 없는 공간에서 지내고 싶은 순간이 있다. 내 기분이 어느 한 장르의 음악으로 표현되지 않았으면 하는 순간. 내가 담고 있는 생각이 어떤 소리의 떨림으로부터 조차 방해받고 싶지 않은 순간. 그저 온전히 내 기분 그대로를 내버려 두고 싶은 순간 말이다.
종종 학교에서도 그러한 갈증이 느껴진다. 함께 하는 삶이 좋고, 교류가 있어 행복하고,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활력을 주는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때때로 고요함 그 자체의 소중함을 재차 느끼곤 한다.
그럴 땐 밖으로 나가자!
선생님이라고 모든 것을 학교에서 해결해야 하는 법은 아니다. 학교를 잠시 떠나본다. 일을 빠르게 마무리하고 학교 바깥으로 나가보자. 바쁘고 치열하게 살던 학교를 조금만 벗어나면 모든 것이 고요하다. 낙엽이 쓸리는 소리도, 지나가는 자동차들의 겹쳐지는 무거운 소리도 전혀 신경 쓰이지 않다.
그럴 때 나는 고요함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것 같다. 내가 하고 싶은 생각을 나의 박자에 맞추어 마음껏 해 볼 수 있다. 언제라도 질리면 다른 생각을 찾을 수도 있고, 생각 자체를 그만 둬 버릴 수도 있다.
무슨 소리를 적어내려가는지 모르겠다. 지금도 아마 고요함이 필요한 순간인가 보다. 자, 잠시 나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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