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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님들은 2월이 되면 지금 쓰던 교실을 비우고 새 교실로 이사를 한다. 학생들이 없어 조용하던 학교는 수레를 들고 왔다갔다 하는 선생님들로 분주하다. 이 즈음이 되면 '올해도 새 학년, 새 학기가 시작되는구나'하는 느낌이 든다. 몇 년 전, 새 교실로 이사를 완료하고 짐정리를 하다 지난 학년 선생님께서 두고 가신 물건들 중 계산기를 발견했다. 수학 시간에 학생들이 계산기를 사용하는 활동이 있기는 하다. 계산능력이 주가 되지 않는 수학 활동에서 사용한다. 하지만 이것은 학생용이 아닌 교사용이었다. '선생님이 계산기가 왜 필요할까?' 그리고 정확히 4년 뒤 나는 계산기를 애용하고 있다. 바로 예산 때문이다.

 

 학교에서 교육과정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학습준비물비, 운동회나 학교 축제 등의 행사를 위한 행사 운영비, 현장체험학습비 등 학생들의 교육활동부터 식비, 시설 유지 및 보수, 보건 및 방역 용품, 도교육청의 추진 사업 등 많은 분야에서 비용이 발생한다. 학교에서는 한 해동안의 돈 쓰임을 미리 예측하여 편성을 해둔다. 이것이 한 해 예산업무의 시작이다.

 

출처: 강원도교육청 홈페이지

 예산을 학교마다 주먹구구식으로 편성할 수는 없다. 각 도교육청에서는 예산편성기본지침이 있다. 이 지침을 참고하여 학교예산을 편성한다. 편성된 예산은 학교로 교부된다. 현장에서는 이를 본예산이라고 이야기한다. 본예산을 가지고 1년간의 학교살림이 시작된다.

 

 예산은 어디까지나 미래의 쓰임을 예상하여 편성된 자료이다. 그래서 막상 학기가 시작되면 예상보다 더 쓰이기도, 덜 쓰이기도 한다. 예를들어 A예산과 B예산이 있다. A예산은 편성된 것보다 쓰임이 많아 부족한 상황이고 B예산은 편성된 것보다 쓰임이 적어 남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B예산의 남는 금액을 A예산으로 편성하여 사용한다. 이를 추경(추가경정예산)이라고 한다. 보통 학교에서는 분기별로 추경을 진행한다. 여기까지는 다른 공무원 직렬이나 회사와 체계가 비슷하다. 학교는 실별로 각각 담당하여 사용하는 예산이 있고, 행정실과 교무실에서 이를 관리, 보조한다. 본예산에서는 예산업무의 어려움이 발생하지 않는다. 예산의 어려움은 주로 교육청에서 내려오는 예산과 교육청과 학교의 업무 흐름의 차이에서 나온다.

 

 교육청에서는 학교를 대상으로 사업을 추진한다. 노후된 시설을 리모델링하거나 기초학력 결손을 위한 인력 지원 등 내용은 다양하다. 보통은 '어떠한 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며, 얼마의 예산을 배부해줄 예정이니 필요한 학교에서는 예산사용 계획서를 작성하여 신청하라'는 공문이 내려온다. 학교에서 이 사업이 필요한 경우 신청을 한다. 교육청은 신청한 학교들 중 예산이 필요한 학교를 선정한다. 선정된 학교에는 사업을 위한 예산이 배부된다. 학교는 배부된 예산을 목적에 알맞게 사용하고 예산 사용에 대한 보고를 한다. 이런 예산은 우리 학교에 필요가 없는 경우, 신청을 하지 않으면 된다. 더 필요한 곳으로 예산이 사용되는 것이 맞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끔 모든 학교에 일괄로 예산이 내려올 때가 있다. 보통 2학기 중반, 교육과정 마무리까지 2-3개월 정도 남은 시점이다. '어떠한 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며, 이러이러한 목적으로만 예산을 사용할 것, 12월 몇일까지 사용하고 보고할 것'의 내용의 공문이 오고 예산이 교부되어 버린다. 업무 담당자는 당황스럽다. 2개월 뒤면 학생들이 학교에 없는데 몇 천만원이 들어온 것이다.

 

 또한 이런 예산은 사용해야 하는 분야가 정해져 있다. A분야에만 사용하는 것으로 예산이 100만원이 들어왔다면 이는 A분야에만 사용되어야 한다. 학교에서는 A분야보다 B분야의 예산이 필요하지만 이 예산은 B분야로 편성이 안된다. 최대한 필요한 곳에 쓰려고 노력하나 정말 필요한 곳이 아닌 집행을 위한 집행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답답한 마음에 교육청에 전화를 해보면 되도록이면 소진해달라는 이야기 뿐이다.

 

 교육청의 업무 처리 기한이 학교와 다른 것도 현장의 불편함 중 하나다. 학교의 한 해는 3월 1일부터 2월 말까지다. 학생들의 교육과정에 맞추어 운영된다. 하지만 교육청은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다. 따라서 학교는 대부분의 예산을 12월 말에 맞추어 모두 사용하고 보고해야 한다. 12월말의 학교는 학기말 성적처리, 학생들과의 한 학년 마무리 등으로 바쁘다. 이때 예산까지 모두 처리해야 하는 어려움이 생긴다. 방학인 1월, 학교에서는 각종 겨울방학 프로그램 등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예산을 12월까지 모두 사용해야 하므로 12월 중에 1월에 사용할 금액을 미리 생각해서 집행해야 한다. 예산 사용이 내실있게 이루어지기 어렵다.

 

 이 글이 학교에 돈이 남아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더 좋은 사용처에 돈을 사용하기 위해 학교현장에서는 많은 고민이 이루어지고 있다. 학교 선생님들은 작은 학용품이나 교구 하나를 살 때에도 어떤 것이 교육적일지, 예산을 낭비하지는 않을지 등등 긴 시간의 회의를 하고 알아본다. 그리고 소모성 물품이더라도 한 해가 마무리되면 남겨두고 다음 해에 재사용하고 새롭게 교부받은 예산은 다른 교육물품을 사는 등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교육청에서 학교현장을 아주 조금만 배려해주었으면 좋겠다. 찬 바람이 불 때 밀어내듯이 예산을 교부하면 결국 연말에 보도블럭을 바꾸는 느낌의 집행을 위한 집행에 그칠 수밖에 없다. 일부를 학교 본예산으로 편성해 주어 학교 예산 집행의 자율성을 확대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럼 현장에서는 많은 고민과 함께 필요한 학생들과 교육활동에 예산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고 교육의 질도 높아질 것이다. 교육청도 학교와 학생들을 위해 있는 기관이라 생각한다. 3월에 시작해서 2월에 마무리하는 학교의 흐름을 이해하고 맞추어 주어야 한다. 기왕 같은 일 하고 같은 돈 쓸거면 학생들한테 잘 쓰면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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