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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용두사미형 인간이다. 그러려니 하고 넘기기엔 다소 증상이 심하다. 지나가는 곳마다 '하다 맘'의 흔적이 남아있다. 처음에는 모든 것들이 재미있어 보인다. 그리고 할 수 있을것만 같다. 그런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일을 벌린다. 거창한 시작의 순간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점점 흥미가 떨어진다. 그럼 해야 할 이유도 사라진다. 무언가를 시작할때 재미가 동기가 되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혹은 벌려놓은 일들이 많아 버거워진다. 그러면 하나, 둘 포기한다. 사미의 순간이 오는 것이다. 이 과정이 반복된다. 평소 한번에 여러 책들을 읽다가 한 권도 제대로 못 읽었던 적이 많다. 헬스장을 끊어놨음에도 갑자기 바깥공기를 마시며 뛰고 싶어서 강가로 나가며, 악기를 배운다고 도전했다가 포기한 것도 부지기수다.

 

 이런 모습은 교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신규때는 학년 초에 의욕적으로 많은 일들을 계획했다. 아침활동을 요일별로 다르게 운영하기도 하고 학생들의 글을 엮어서 달마다 문집으로 내주기도 했다. 그외 이것저것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대로 재미있겠다 싶으면 학급활동에 추가했다. 하지만 이렇게 불어난 일들이 점점 많아지면 지쳐서 하나, 둘 포기하게 되고, 학년이 끝날 때 즈음이면 제대로 마무리 된 것들이 거의 없었다.

 

 종업식날 아이들을 돌려보내면 잠시 앉아 1년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진다. 꼭 그 순간 포기했던 활동들이 떠오른다. 뒤이어 '아이들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책임감없는 어른이라'는 생각이 들며 아쉬움과 미안함이 남는다. 하지만 교직의 특성상 학년의 끝은 새로운 학년의 시작이다. 사미의 아쉬움은 마음의 부채가 되어 새 학년에 일을 벌리게 되는 원동력이 된다. 하지만 비슷한 엔딩을 반복한다.

 

 햇수로 5년차, 지난 4번의 실수를 경험삼아 올해는 조금 달라지기로 마음먹었다. 할 수 있을 정도만 끌고 가보기로 했다. 학년이 끝나고 아이들이 되돌아봤을때 뿌듯한 결과물 한, 두개만 만들어주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라 당장 내일이라도 아이들과 함께하고 싶었지만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다. 일을 더 벌리면 지금 하고 있는 것들도 제대로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19로 제한적인 상황인 것도 한몫했다. 시간이 흘러 11월 중순이 되었다. 3월부터 시작한 긴 흐름에서 11월은 학년 초에 목표한 것들이 어느정도 결실로 드러나는 시기이다. 목표로 했던 활동들은 잘 이루어지고 있었다. 마지막까지 끌고가서 마침표만 찍으면 된다. 하지만 내 맘은 만족스럽지 못하다.  

 

 지난 해까지는 너무 많은 것들을 시작만 해놓고 제대로 마무리짓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감이 있었다. 하지만 올해는 안 한것에 대한 미련이 남는다. 하다가 포기하더라도 새로운 활동들을 해보는 것이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들을 교실에 구현해 보는 것은 나에게도 좋은 경험이 될 수 있었을텐데.. 하는 것과 안 하는 것 둘 다 불만족스럽다면 적어도 미련은 없는 용두사미 엔딩이 낫지 않을까? 등의 생각이 계속 떠오른다.

 

 종종 아이들이 이야기를 나눌 때 여름에 너무 더우니깐 빨리 겨울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하다가 막상 겨울이 되면 너무 추우니 여름이 왔으면 좋겠다고 할때가 있다. 딱 내가 그 꼴이다. 그래도 손바닥 뒤집듯이 몇 년 뒤집어보다 보면 나에게 맞는 선을 찾게 되지 않을까. 아니면 영원한 줄다리기 속에서 살아갈지도.

 

 내년 11월에는 다시 용두사미가 된 내모습을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조금은 덜 후회할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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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티글도 용두사미가 되지 않기를.(과연?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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