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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움에 속아 내용도 귀여울거라 생각말라

 교사는 학교 안에서 두 가지 소속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학년(혹은 담당과목)이다. 학년이 배정되면 한 해동안 동학년 선생님들과 한 학년에 속해서 교육과정을 운영한다. 두 번째는 업무 소속 부서이다. 교사는 업무 외 행정업무를 하는데 업무의 특성에 따라 부서를 나뉜다. 학교마다 이름은 다르나 대체로 학사일정과 학생관리 등을 담당하는 교무부, 교육과정 및 평가를 담당하는 연구부, 정보기기나 컴퓨터 각종 시스템을 담당하는 과학/정보부, 학교폭력이나 안전교육 등을 담당하는 생활안전부, 체육과 관련한 업무를 담당하는 체육부 정도로 구성이 되어있다. 

 

 학년말이 되면 학년별, 부서별로 올해의 교육과정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진다. 잘 된 부분은 이어서, 어려웠던 부분은 개선하여 내년 교육과정에 반영하기 위함이다. 며칠 전, 소속 부서에서 회의를 하던 중이었다. 담당업무별로 돌아가며 이야기를 나누던 중 한 선생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본인은 이 업무를 하기 싫었는데 교감선생님께서 강제로 업무를 주셨다. 본인은 연장자이므로 내년에는 업무를 배려해주셨으면 좋겠다"

 

 사람들마다 상황이 다를 것이고 그에 따른 생각 또한 자유다. 하지만 생각으로만 머물러야 하는 것이 있다. 적어도 회의자리에서 하실 말씀은 아닌것 같았다.  

 

 학교는 1인 1업무라는 이름으로 교내 모든 교사가 하나 이상의 업무를 담당하게 한다. 그러나 업무로 보면 하나지만 업무 사이의 업무량은 천차만별이다. 어떤 업무는 1년동안 학생부를 담당하는 모든 시스템을 관리하기도 하고, 1년동안 학교에 있는 모든 행사의 방송과 음향을 맡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업무는 1년에 한번 오는 공문을 안내하거나 1회 보고 정도가 전부다. 

 

 업무량의 차이가 큰 것을 고려하여 학교는 학년과 업무의 균형을 맞추고자 노력한다. 입학식, 입학초기적응활동 등 모든 것이 처음이라 손이 많이 가는 1학년과 졸업업무를 해야 하는 6학년에는 상대적으로 적은 업무량을 담당하는 등의 방식으로 조율이 이루어진다. 이러한 학년과 업무의 배정은 회의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때 학년과 업무의 균형 외 고려되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원로교사이다. 

 

 학교에는 원로교사라는 개념이 있다. 경력이 오래되거나 나이가 많은 교사들을 의미하는 것이다. 학교는 원로교사를 배려하여 원하는 학년이나 업무를 배정해주는 문화가 있다. 실제로 이분들의 노하우는 학년 선생님들에게 큰 도움과 성장의 기회를 준다. 그리고 긴 시간의 경험은 학년 교육과정을 매끄럽게 운영하는데 큰 도움을 주신다. 대부분의 원로교사 선생님들께서도 배려받고 있음을 알고 계시고 선배님의 역할을 멋지게 해주신다.

 

 하지만 몇몇 분들께서 본인이 연장자임을 앞세워 과한 배려를 받으려고 할때 이야기는 달라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교육대학교 출신인 초등학교에서 교감, 교장보다도 경력이 많은 선생님께서 강하게 배려를 요구하시면 학교에서는 이를 어느정도 반영하게 된다(요구와 반영 모두 이해가 가지는 않는다). 한 학교가 해야 할 업무는 동일한데 본인이 일을 하지 않으면 그 일은 결국 다른 사람들의 업무가 된다. 남은 일들은 대부분 젊은 교사들이나 이미 업무가 많은 부장교사들에게 돌아간다. 그날 회의자리에는 올해 코로나19로 인해 폭발적으로 늘어난 업무에 힘든 한 해를 보낸 선생님들이 계셨다. 그분들은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교사가 교육과정 운영에만 집중할 수 있어야 수업과 생활지도의 질이 올라간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교육과정과 관련없는 행정업무는 교사의 손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교사의 업무를 줄이려는 노력은 교육 현장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일단, 오늘의 학교에는 업무가 존재한다. 그렇다면 구성원들이 서로 배려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퇴직 1년 남기고 학년부장을 맡으시려고 하셨던 선배님이 계셨다. 학교에 행사가 열렸는데 할 사람이 없자 본인이 하겠다고 하셨고, 후배교사가 부당한 일을 겪고 왔을때 교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 못하는 말을 대신 해주시기도 하셨다. 나도 시간이 지나면 교사들끼리 하는 말로 '한 날보다 남은날이 더 적고, 위 보다 아래가 더 많은'교사가 될 것이다. 과연 그때 어떤 모습의 선배교사가 될까? 문득 생각이 많아지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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