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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도면 간소한편

 

 

 짐을 실은 카트가 복도를 오가는 소리가 들리고 선생님들이 종이상자에 담긴 물건을 옮기는 모습이 보이면 까마득하기만 했던 학년말이 오긴 왔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선생님들이 1년 동안 지냈던 교실을 정리하고 새 교실로 거처를 옮긴다. 아이들이 없어 조용했던 학교엔 오랜만에 생기가 돈다. 남겨둘 물건, 가져갈 물건을 분류한 후 상자에 담아 카트에 차곡차곡 쌓는다. 무거워진 카트를 끌고 복도를 걸어간다. 작년까지는 목적지가 새 교실이었지만 올해는 주차장이다. 올해를 마지막으로 학교를 옮기기 때문이다.  첫 학교에서의 5년, 어느덧 끝이 다가왔다.  

 

 군대에서 전역일 다음 날 발령이 났다. 전역날 복무를 함께한 동기들과 시간을 가지지도 못하고 휴가때 미리 싸놓은 짐을 챙겨 발령지로 향했다. '학교 생활을 미리 준비할 시간이 일주일 정도만 있었으면'하는 아쉬움과 약간의 설렘을 안고 잠에 들었다. 발령날은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를 정도로 정신없었다. 마침 그날이 4월 1일이었는데 '이 모든 것이 만우절 거짓말이었음 좋겠다'라고 생각하며 집에 돌아왔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바쁜 날들의 연속이었다. 학교에서 마주치는 모든 것들이 낯설었다. 처음 해보는 일들이라 실수도 많았다. 힘들었던 시간들이었지만 좋은 사람들 덕분에 잘 넘길 수 있었다. 

 

 학생들은 교사라는 이유로 조건없이 마음을 열어줬다. 발령 첫해 감당하기 버거운 일들의 연속으로 지친 나머지 '나랑 너무 안맞아 그만 둬야 하나'생각을 했던 날이 있었다. 그날 종례를 마쳤을때 어떤 학생이 편지를 주고 갔다. 이런저런 이야기로 시작된 편지의 끝은 '선생님이 저희 반 선생님이여서 정말정말 아주아주 기뻐요'였다. 그 후로 학교일이 힘들때마다 그 편지를 읽고 '누군가는 나를 기다린다'라고 생각을 하며 출근을 했다. 학생들이 써준 편지나 쪽지는 모두 가지고 있는데 어느덧 두 상자가 넘어간다. 부족함에도 분에 넘는 사랑을 받았다. 

 

 좋은 선생님들도 많이 만났다. 발령받던 당시, 학교에는 신규 선생님들이 많이 계셨다. 연령대와, 학교 현장에서의 고민이 비슷하다 보니 이야기가 잘 통했다. 즐거운 일이 있을 때는 축하해줬고 힘들땐 함께 위로해주며 힘든 감정을 나누었다. 서로 도움이 될 만한 정보와 아이디어를 나누며 역량을 키워나갔다. 아무리 학생들이, 학부모가, 학교 문화가 힘들어도 의지할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큰 힘이 되었다.

 

 선배 선생님들께도 많은 도움을 받았다. 처음 학교에 가면 모르는 일 투성이다. 교실에 앉아있으면 대뜸 뭘 언제까지 해달라고 업무쪽지가 온다. 하지만 그게 뭔지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너무 당연하게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이지만 그 당시에는 당황스럽고 막막했다. 그럴 때마다 동학년 선생님들께서 도와주셨다. 선생님들께선 학교에서 일처리를 하는 방법과 절차, 공문 올리는 방법, 생활기록부 기재 시스템의 사용 방법, 학교 교육과정에 따른 학사일정 및 행사 운영 등 기본적인 업무들에서부터 교실관리, 학생상담, 수업기법 등 본인들의 노하우까지 친절하게 알려주셨다. 그때는 내 앞에 있는 일들이 정신없어 우리 반 말고는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시간이 지난 후 돌이켜보니 본인들의 일도 바쁘셨을텐데 1년 내내 신규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수많은 도움과 배려를 주셨다. 

 

 차에 짐을 모두 싣고 잠시 고개를 들어 학교를 둘러본다. 눈이 닿는 곳곳에 그간의 기억들이 녹아있다. 5년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 바로 떠올려보면 힘들었던 일들이 많이 떠오른다. 안타까웠던 상황을 지켜만 봐야 하는 상황에 슬프기도 했고 나의 능력이 부족하여 일어나는 일들에 자책을 하기도 했다. 무심코 한 행동을 후회하기도 했다. 하지만 9번이 힘들어도 1번의 행복함이 있으면 또 다음 9번의 힘듦을 견딜 힘을 얻지 않는가. 힘들었던 만큼 즐겁고 보람을 느꼈던 일들도 많았다. 그리고 그런 날들 덕분에 전역 후 빡빡이 머리로 학교에 첫 발을 딛었던 나는 점점 교사의 모습을 갖춰가게 되었다. 학교는 학생들 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성장의 공간이었다. 

 

 시동을 걸고 교문을 빠져나간다. 차가 추운건지 내가 시원섭섭한건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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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날 여느교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