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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간발령으로 첫 해를 보내고 햇수로 막 2년차가 되었을 때였다. 학년 말 즈음이었는데 일이 있어 교무실에 들어갔다. 교감선생님과 일 관련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 교감선생님께서 "선생님은 내년에 몇 학년 할거야?"하고 물어보셨다. 잘 모르겠다고 이야기하니 "선생님은 왠지 어린 아이들도 잘 맞을것 같아."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이 복선이었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2월 학년이 발표되는 날, 나는 1학년으로 배정받게 되었다. 배정 소식에 주변의 선생님들이 놀라셨다. 신규교사가 1학년으로 간다는 것이 의외라는 말씀 후 뒤이어 약간의 측은함이 느껴지는 응원을 받았다.

 

 선생님들의 이상했던 반응의 이유는 학기가 시작되자 알게 되었다. 1학년과의 학급살이는 생각보다 힘들었다. 그 당시 나는 학급을 제대로 관리해본 경험이 없었다. 학급을 처음 맡는 교사와 학교가 처음인 학생들이 한 교실 안에서 지내게 된 상황. 배가 나아가야 하는데 노를 저어야 할 사람들이 노 젓는 방법을 모르며 항해사가 방향을 못잡는다. 순항할 리가 없었다.

 

 1학년 학생들을 잘 몰랐던 것도 한 몫햇다. 학년특성상 손이 많이 갔다. 어느새 화장실을 1-2시간 참는 것, 밥먹다 스무 번은 일어나서 급식지도를 하는 것은 예삿일이었고 방과후에는 30분정도는 의자에 앉아 아무것도 하지 못할 정도로 진이 빠졌다. 학부모님들과의 관계도 쉽지 않았다. 1학년에 입학하는 학생이 둘째나 셋째인 가정은 이미 1학년 자녀 경험을 해보았기 때문에 그나마 괜찮다. 하지만 첫째를 1학년으로 보내는 부모님의 마음엔 걱정과 궁금함이 가득할 것이다. 하지만 눈 앞에 있는 것들을 감당하기도 바빴고 그런 학부모님들의 마음들을 잘 헤아리지 못했다. 총체적 난국이었다. 

 

 그때 동학년 선생님들의 도움을 정말 많이 받았다. 선생님들께선 수업에 사용할 활동지를 만드실 때 우리 반 학생들 수 만큼 더 준비해주셨다. 미술활동이 들었던 날이었는데 아무 준비 하지 말라고 하시며 자기 반에 세팅되어있던 미술도구를 그대로 빌려주시기도 하였다. 수업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 전전긍긍할때면 늘 우리 반으로 수업을 위한 준비물들이 배달왔다. 아마 혼자서 1년을 보냈더라면 우리반 학생들이 2학년에 올라가는 모습은 보지 못하지 않았을까 싶다.

 

  배운 것도 많았다. 학년 선생님들께서는 대부분 교직경력이 30년 가량 정도였다. 긴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지혜롭게 학급 운영을 해 나가셨다. 당장의 하루 보다는 한 달 뒤, 일 년 뒤의 학생들의 성장을 생각하시며 교육과정을 운영하셨다. 학급 운영이 잘 되지 않아 고민을 말씀드리면 조언을 많이 해주셨고 교사가 학생을 대할 때의 자세와 마음가짐에 대해서도 좋은 말씀을 해주셨다. 그때 배운 것들은 지금도 교실에서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다. 

 

 멋진 선배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후배교사들이 하지 못하는 말을 교무실에 가서 관리자에게 대신 해주기도 했으며, 학교행사가 열리는데 담당자가 없어 고민할때 본인이 맡아서 행사를 담당하기도 하셨다. 바쁜 일정 속에서 학생들에게 난타를 가르쳐 공연을 다니거나 학생들의 글과 그림을 모은 학급문집을 분기별로 만드는 선생님도 계셨다. 힘들어하는 후배교사들에게 인간적인 따뜻함으로 위로를 건네주시기도 하셨다. 

 

 힘들었지만 선생님들 덕분에 행복한 한 해였다. 시간은 흘러 1학년 학생들은 2학년이 되었다. 그때 한 분께서 퇴직을 하셨다. 그리고 올 해 두분께서 명예퇴직을 하신다. 선생님들의 경험과 지혜가 그대로 사라지는 것 같아 아쉽다. 교사는 사람들을 대하는 직업이다. 아무리 교육기법에 대한 공부를 하고 관련 도서를 읽어도 학생들은 모두 다르기 때문에 계산결과처럼 정확하게 기법을 적용할 수 없고, 책 속의 사례와 똑같은 반응을 기대할 수 없다. 그래서 저경력 교사들에게 선배 선생님들의 노하우는 값지다. 이를 한 곳에 모아둔다면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도움을 받기만 했는데 드릴 기회를 가지지 못한것도 죄송스럽다. 이제 나도 학교에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정도의 여유가 생겼는데 말이다. 

 

 마지막 날엔 꽃이라도 사들고 가야겠다. 선생님들께서 교직생활을 잘 매듭지으시고 앞으로도 행복하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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