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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경력 선생님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질문 중 하나가 '왜 선생님이 되려고 했어요?'이다. 그럼 가장 많이 나오는 답변 중 하나가 '학교 다닐 때 선생님을 보고 선생님이 되기로 마음 먹었다'이다.  흔한 답변이지만 이는 학생들이 교사에게 얼마나 많은 영향을 받고 있는지를 의미하기도 한다. 학생들은 하루 중 많은 시간을 교사와 함께 하고, 이야기하고, 활동한다. 이때 좋은 영향력을 받은 사람들 중 교사를 진로로 삼는 학생들이 생긴다.

 선생님들을 보고 교사가 되어야겠다고 마음 먹은 것은 아니지만 나도 좋은 선생님들을 거쳐갔다. 발령을 받고 난 뒤, 교사의 관점에서 지난 선생님들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학생의 입장에서 기억하고 있는 선생님들의 말이나 행동을 교사의 입장에서 보니 '이런 마음이셨겠구나'하며 공감이 되기도 하였고 오해처럼 가지고 있었던 마음이 풀리며 죄송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나는 좋은 선생님들을 거쳐온것 같다. 초중고를 통틀어 많은 분들이 기억에 남지만 한 분을 꼽자면 고등학교때 수학 선생님이다.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 내가 진학하기로 한 고등학교에서는 예비고1들을 위한 보충학습을 진행하였다. 학부모의 동의를 받은 학생들만 참가하였고 집에서 노느니 학교에 가서 뭐라도 배워오는게 좋다고 생각하신 부모님의 뜻에 따라 수학의 정석과 ebs고1 책을 들고 수업을 들으러 갔다. 수업은 국, 영, 수로 이루어졌다. 그당시 나는 수학이 너무 어려웠다. 국어와 영어 수업은 어찌어찌 따라가겠는데 수학 수업은 아무리 노력을 해도 따라가지 못했다. 수업이 진행될 수록 답답함만 더해갔다. 그날도 수학문제가 안풀려 해메고 있을 때였다. 문제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마음 속으로 한다는 이야기가 수업 도중 입밖으로 나와버렸다. "하, 하나도 모르겠네."

 그 당시에는 학생을 때리는 체벌이 존재하던 때였고 수업 중 이런 행동은 교사에 대한 반항으로 비춰져 체벌의 대상이 되었다. 교실은 정적에 휩싸였다. 선생님께서는 다른 친구들에게 문제를 풀고 있으라 하신 뒤 나에게 오셨다.

 

"어떤걸 잘 모르겠니?"

"솔직히 첫날 배운거부터 오늘꺼까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너 이름이 뭐야?"

 

 이름을 말씀드리자 선생님께서는 오늘의 수업이 다 끝나면 교무실로 오라고 하셨다. 맞을 각오를 하고 교무실 문을 열었다. 하지만 선생님께서는 책을 펴신 후 친절하게 내가 모른다고 한 내용을 전부 알려주셨다. 학생때의 나는 이 때 마음이 울렸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선생님께 가서 여쭤봤다. 쉬는시간, 점심시간, 야간 자율학습 시간을 가리지 않고 3년을 찾아갔다. 때로는 문제가 안풀려 화가 난 상태로 찾아가 선생님께 따지듯이 문제를 물어보기도 했고, 퇴근을 하시려는 선생님을 붙잡고 현관에서 가르침을 받기도 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선생님께서는 불평 없이 지도해주셨다. 그 덕분에 3년간 수학 성적이 크게 오르게 되었고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못하는 학생임에도 포기없이 공부를 알려주신 것이 감사했고 대학교에 가서 틈틈 연락을 드리다 임용시험과 군대에 입대하면서 연락이 끊어졌다.

 전역을 하고 발령을 받게 되었다. 정신없었던 신규 시절이 지나고 여유가 생길 때 쯤 문득 수학 선생님이 떠올랐다. 학교에서 교사는 학생들의 감정을 받아주는 역할을 많이 한다. 하지만 교사도 사람인지라 마음의 여유가 많을 때가 있고 아닐 때도 있다. 여유가 많은 날에는 학생들의 감정을 읽고 만져주고 받아주는 것이 쉽지만 반대의 날에는 너무 어렵다. 하지만 고등학생때의 선생님께서는 3년간 거의 매일 단 한번도 나의 질문과 약간의 푸념을 거부하신 적이 없다. '교사의 입장에서 나에게 저런 학생이 온다면 나도 저렇게 받아주고 지도해줄 수 있을까?' 어렵고 대단한 일이다. 힘드셨을 것을 생각하니 약간 죄송한 마음도 들었다. 그런 마음이 스승의 날을 맞아 작은 행동으로 이어졌다.

 내가 일하는 시,도군에서는 통합 메신저를 사용한다. 이 메신저를 통해 같은 시,도군의 모든 교사들과 쪽지가 가능하다. 그래서 오랜만에 선생님께 쪽지를 보냈다. 스승의 날 당일은 온라인수업 준비가 바빠서 쪽지를 보내지 못했고 그 다음 주 월요일 늦은 퇴근을 하게 되었는데 퇴근 직전에 쪽지를 보냈다. 그리고 다음 날 퇴근 전 답장이 왔다. 선생님께서 나에게 선생님이라 부르니 느낌이 이상했다. 그러면서도 선생님들이 해주실 법한 좋은 말씀들을 많이 해주셨다. 지금은 먼 곳에 있지만 기회가 되면 찾아봽고 그때 어떤 마음이셨는지 물어보고 감사한 마음을 전해드리고 싶다. 나도 나를 지나간 학생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었을까? 만날 학생들에게 줄 수 있을까? 늘 어려운 일이다.

 

쪽지내용. 원본이 소실되어 안타까울 따름이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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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날 여느교실